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페르낭 브로델 (문단 편집) == 생애 == 1902년 교사의 아들로 태어나 파리 [[소르본대학교]]에서 역사 학사 학위를 따고, 1924부터 1932년 사이에 알제리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등, 박사 학위를 바로 따는 게 일반이던 프랑스 사학계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인 커리어를 밟았다. 그 뒤 파리의 중등학교와 상파울루대학교 교편을 거쳐 1937년 고등연구실습원에 들어간다. 1940년 프랑스가 독일에 패망한 해에 프랑스 육군에서 중위로 싸우다 독일군에게 사로잡혀 1945년까지 뤼베크의 전쟁 포로 수용소에 있었다. 그곳에 있으면서 순전히 기억에 의거하여 16세기 지중해 지역 역사에 대한 논문을 썼고 이 논문으로 1947년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해당 논문은 1949년 《[[펠리페 2세]] 시대의 지중해와 지중해 세계》란 책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지중해의 [[레판토 해전]](1571)에서 절정에 달한 16세기 스페인과 [[오스만 제국]] 사이의 분쟁에 초점을 맞추고, 지중해 지역의 지리, 역사, 종교, 농업, 기술, 지적 풍토 등에 대한 광범위한 서술을 담고 있다. 그의 이 고전적 저작은 오랜 기간의 흐름과 변화를 상세히 분석하고 나서 더 자세한 역사적 사건들을 묘사하는 서술방법을 취하고 있다. 국내에서 까치 출판사의 번역본을 만나볼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에콜 프라티크 데 조트 제튀드로 돌아와 1956~1972년 사회과학부 책임자를 역임했다. 1950년에 소르본 대학교 교직에 지원했다가 실패했으나 같은 해 콜레주 드 프랑스의 교수로 선출되었다. 1956~1968년 프랑스 학자 [[뤼시앵 페브르]]와 [[마르크 블로크]]가 창간한 역사 잡지 《아날》의 편집인으로 일하면서, 이후 2세대 [[아날학파]]를 진두지휘하는 대표인물로 거듭났다. 아날학파는 기존 실증주의 역사가 정치나 외교 사건을 강조하는 데 반대해 그러한 사건들 밑에 깔려 있는 조건들, 즉 기후, 지리, 인구 , 통신, 교통 등에 주의를 기울이면서, 상업과 일상생활에 더 큰 비중을 두고 다루는 학파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아날학파는 통계에 의거한 분석과 수량화에 크게 의존했다. 1979년 프랑스 정체성이 중앙집권, 제한된 경제적 능력, 뛰어난 문화적 파급력과 프랑스어에 기반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정체성"이라는 다소 충격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으나 생전에 끝내지 못해 미완작으로 남았다. 1984년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출되고 이듬해 사망했다. 브로델의 두 번째 주요저작은 3권으로 이루어진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이며, 이 책은 단연 20세기를 대표하는 명저로 이후 수많은 학자에게 주요한 영향을 끼쳤다. 국내에서는 역시 까치 출판사를 통해 완역본이 나와있는 상태이며, 보다 쉬운 축약본 성격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가 갈라파고스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상태이다. 이외에도 《상업 유통》, 《일상 생활》, 《세계에 대한 전망》으로 이루어진 시리즈 저서를 저술하였다. 이 저작들은 중세에서 산업혁명기까지의 사회경제사를 연구했다. 브로델은 이 연구를 통해 산업혁명이 서유럽에서 일어난 이유를 인간의 모든 경험, 활동, 사건들을 동원해 설명하고 있다. 아쉽게도 국내에서는 해당 저작에 관한 번역본을 만나볼 수는 없는 상황이다. 페르낭 브로델의 또다른 저서 《지중해의 기억》의 경우, 한길사 그레이트북스 시리즈에 포함되어 현재 번역본을 만나볼 수 있다. 번역자는 [[강주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